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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리있고 당당했던 '강수연'

by 놀이방 2022. 5. 9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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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10년 인터뷰 중 "기력이 있는 한 계속 배우를 하고 싶다. 75세가 되었을 때는 영화 '집으로' 같은 할머니 역할도 해보고 싶다."라고 말했던 강수연은 7일 오후 3시경 향년 56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.

 

언제나 월드스타였던 강수연은 늘 그랫듯이 영화에 오롯이 헌신하고자 하는 배우였다.

올해 공개하는 넷플릭스 영화인 '정이'로 복귀하고 또 연기를 본격적으로 재개할 계획이었으나, 뇌출혈에 따른 심정지로 5월 5일 쓰러졌고, 결국 그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.

 

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빈소가 마련되 있으며, 8일에 임권택 감독이 빈소를 찾았고, "좋은 연기자를 만난 행운 덕분에 내 영화가 빛날 수 있었다"라고 말했다.

또한 "워낙 영리한 배우였기에 오랜 세월을 함께했음에도 촬영장에서나 어디에서나 지장을 준 적이 한번도 없었다. 정말 감사한 배우였다"라고 비통해했습니다. 

봉준호 감독은 " 영정사진이 마치 영화 촬영의 소품같이 느껴질정도로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"라고 말했다.

 

 

 

고 강수연의 걸어온 길은 한국 영화사와 길을 같이 한다.

1969년도 세 살때 이미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하였고, 초등학생 때 어린이 드라마인 '똘똘이의 모험'과 '정의의 번개돌이' 등 아역스타로 뜨기 시작했다.

고등학생 시절에는 1982년도 영화인 '깨소금과 옥떨매' 1983년도 드라마 '고교생 일기' 등 출연하면서 TV와 영화 스크린을 자주 넘나들었다.

 

20대 초반에는 '젊은 거장' 배우가 된데에는 임권택 감독의 공이 제일 컸다. 

고인은 임권택 감독의 '씨받이' 에서 주인공을 맡아 그 해에 베니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, 한국 배우가 세계 영화제에서의 수상한 것은 고인이 처음이었다.

 

명실상부 고 강수연님은 월드스타로서 모스크바영화제의 여우주연상도 받게 되었다.

 

 

 

 

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집행 위원장은 영화 씨받이를 보고 '강수연 연기가 정말 너무 좋았다' 라며 말했다.

2011년 방송에서는 "당시 모두가 노출 연기에만 관심이 있어서 큰 상처를 받았는데, 상을 타고나니 '어쩌면 그렇게 연기를 잘하냐'라고 물어 상처가 치유됐다"라고 얘기했다.

 

고인은 의리 있고 인간적인 모습으로도 유명했다.

고 강수연을 월드스타 반열에 오르게 한 임권택 감독에 대해서도 더 특별히 각별했다.

카리스마 있고 불의 앞에서는 단호하게 행동하여 "깡수연" 이라고도 불렸으며 과거 제작자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그를 호텔에 불렀을 때도 주저 없이 뺨을 날렸다고 한다.

그는 "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대하는 건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참을 수 없다"라고 얘기했다.

 

강수연하면 '삭발 투혼'이 생각난다. 그에게서는 뗄 수 없는 단어이다.

영화 '아제 아제 바라아제'에서 비구니 역을 위해서 삭발하던 모습이 한국영화사의 유명한 역사적인 장면으로 꼽힌다.

고인은 '머리는 또 자라는 법' 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, '여인천하'에서는 얇은 소복만 입고도 한겨울 얼음에 장시간 들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.

 

항상 당당한 고 강수연 님은 언제나 당당한 모습을 보여왔지만, 그 이면에는 여린 모습도 많았다.

고인은 "당당한 척할 때, 그때가 가장 외롭다"라고 얘기했다.

 

 

하늘에서는 그가 외롭지 않고 더욱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본다.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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